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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설비/승강기

한국 승강기의 역사 - 광복 이후와 한국전쟁 시기

by ByteBrute 2023. 2. 25.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세계 2차 대전에서 항복을 선언하며 우리나라도 광복을 맞이하게 됩니다. 많은 것이 달라진 이때, 승강기 역시 기존에 일본인들의 편의 및 목적에 의해 운용되던 사업이 점차 조선사람들 위주가 되는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광복 이후부터 6.25 전쟁 시기까지의 한국의 승강기 사업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승강기의 역사 - 광복 이후와 한국전쟁 시기

 

 

≪ 목차 ≫

1. 광복 이후의 승강기 사업
2. 광복 이후 ~ 한국전쟁 시기의
3. 6.25 전쟁 이후의 승강기 사업

 

 

한국 전쟁 이후로 노선이 폐쇄되어 운행하지 못해 녹슬어 버린 전차
한국 승강기의 역사 - 광복 이후와 한국전쟁 시기

 

 

 

1. 광복 이후의 승강기 사업

 

일본군이 사라진 우리나라 땅을 채운 것은 미군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미국 내에서 승강기 사용에 익숙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들이 이용하는 건물 내에 승강기 없는 것을 불편해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서울 위주로나마 설치되었던 승강기들은 이미 일제강탈로 공출되어 사실상 우리나라에는 승강기가 몇 대 없었습니다. 거기에 수리할 수 있는 기사마저 부족하여 더욱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미군은 일제 패망 시 오티스엘리베이터 경성 영업소에 직원으로 있던 조선인 기술자들을 다시 모아 그들에게 승강기 수리를 의뢰하는 데, 이 것이 진정한 우리나라 승강기 발전 역사의 효시라 할 수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일본 승강기 회사에 일본인 기사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쫓겨나간 해방 이후의 한국에는 반드시 조선인이 점검 및 수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오티스엘리베이터 경성 영업소의 직원이던 최복균 이 1945년 10월 창업한 '서울승강기공업사'가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승강기 회사입니다. 이후 미군정이 안정되며 1946년 6월, 미국 무역회사가 한국의 지점을 내며 오티스엘리베이터의 승강기와 그 부품들을 한국에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2. 광복 이후 ~ 한국전쟁 시기의 승강기 사업 발전의 재한 요소

 

그러나 이 시기에는 다음의 이유로 승강기 산업이 활발한 발전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1. 전력 부족
    • 일제강점 당시 발전소의 대부분은 북한 지역에 위치했습니다.
      해방 이후 남과 북이 각기 미국과 소련이라는 각기 다른 진영의 영향을 받음에 따라 갈등이 골이 깊어져 1947년 말 북 측은 전력공급을 제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2. 빈약한 자본
    • 일제강점기 마지막에 진주만 공습 등 전쟁이 더욱 심화되며 일본을 우리나라를 남김없이 수탈해 갔습니다.
      아무리 해방이 되었다 한들 이미 일본에게 모든 것을 빼앗겨 버린 우리나라는 생산기반시설 마저 자리잡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승강기 사업은 건물의 건축경기에 영향을 받습니다.
      신규 건물이 많이 생겨나야 건물의 설비 중 하나인 승강기 사업도 수요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나라의 발전보다는 제도, 행정, 제정의 안정이 우선적이었던 시대였습니다.
  3. 6.25 전쟁
    •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우리나라는 또다시 전쟁에 접어들게 됩니다.
      광복 이후 만 5년이 채 되지 않던 시점이었습니다.
      전쟁 자체로 인해 건물들이 물리적으로 파괴는 것은 물론 사람들의 삶에도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외국의 많은 나라로부터 원조물자를 받으며 오직 '생존' 만이 목표였던 어려운 시기였기에 경제 복구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3. 6.25 전쟁 이후의 승강기 사업

 

고비였던 1955년을 지나 우리나라는 부족하나마 경제적 회복을 하기 위해 전쟁을 치유해 가며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필요한 인프라가 많이 부족했기에 외국의 원조 혹은 수입에 의지하였고, 이것이 크고 작은 무역상과 대리점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민간자본들은 원조 대상이 아닌 민간 산업시설과 파괴된 건물 복구 등에 힘을 쏟게 됩니다.

 

1948년 ~ 1957년 까지는 미국 무역회사를 통해 오티스엘리베이터를 수입하면, 한국승강기제작소 (전신: 서울승강기공업사)에서 이를 설치하고, 보수하는 방식이 거의 공식 처럼 되었다고 합니다.

 

 

 

 

 

마치며

 

 

최초의 우리나라 승강기 회사가 생겼다는 점은 고무적이긴 하지만, 암흑시기였던 일제강점기를 겨우 탈출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아 6.25 전쟁이라는 아픔을 다시 겪으며 우리나라의 승강기 사업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또다시 놓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전쟁 이후 나라가 안정화되어 감에 따라 승강기의 수요가 늘며 우리나라의 승강기 제작 기술도 높아져 최초의 국산 승강기가 설치되기까지 이르게 되는데요.

 

이어지는 글에서 한국 전쟁 이후의 승강기 발전에 대해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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