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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설비/승강기

한국 승강기의 역사 - 한국전쟁 이후

by ByteBrute 2023. 2. 25.

한국 전쟁 이후 외국에서 받는 원조와 수입에 의존도가 커지면서 많은 수입상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이 수입한 것 중에 하나는 '승강기'였습니다. 이와 함께 국가 재건으로 승강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우리나라 자체의 승강기 제작까지 발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1950년 대 ~ 1960년 대의 한국 승강기 사업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승강기의 역사 - 한국전쟁 이후

 

≪ 목차 ≫

1. 승강기 수입의 증가
2. 국산 승강기의 등장

 

 

위에서 내려다본 승강로와 로프, 카의 모습
한국 승강기의 역사 - 한국전쟁 이후

 

 

 

1. 승강기 수입의 증가

 

'미국무역'회사가 오티스엘리베이터를 수입하고, 한국승강기제작소 (전신: 서울승강기공업사)에서 이를 설치 및 보수하는 공식은 곧 많은 수입회사들이 등장하며 깨지게 되었습니다.

 

1957년부터 큰 규모의 무역상사들이 등장하였고, 해외 무역회사들의 한국지사가 사무실을 개설하기도 했습니다.

 

독일계 회사였던 리카만 상사는 1957년부터 독일의 '하우 샹 승강기'의 판매를 시작했으며, 같은 해 '위덕무역'이라는 회사는 오티스엘리베이터 다음으로 큰 회사였던 스위스의 '쉰들러엘리베이터'를 국내에 시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에는 미국무역의 '오티스엘리베이터', 리카만의 '하우 샹', 위덕상사의 '쉰들러엘리베이터'의 3개 회사가 시장지분을 나누게 됩니다.

3개 회사 모두 초반에는 자체 설치를 하지 않고 '한국승강기제작소'를 통해 설치의뢰를 하였다고 합니다.

 

1958년에는 한국에 최초의 고속엘리베이터가 서울시민회관 (현재 세종문화회관)에 설치되었습니다.

분속 120m로 오티스엘리베이터의 기종으로 한국승강기제작소에서 설치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이승만 정권이 일본인의 입국을 금지하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 승강기 기술 수준이 높지 않아 승강기의 시운전과 조종을 일본오티스엘리베이터의 승강기 기사가 입국해 진행하였다고 합니다.

 

리카만상사도 1957년 당시 서울의 회사 사옥 등에 승강기를 판매하기는 하였지만 평판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이에 당시의 한국지사장이은 동서였던 일본인 사장 (미쓰비시 승강기 설치전문 용역회사였던 동경산업의 사장)과 협의해 1958년부터는 미쓰비시 승강기를 한국에 판매하려 했습니다.

이승만 정부에서 일본을 철저하게 배척하던 시기였기에 수입이 쉽지는 않았지만 미쓰비시 전기회사 주식의 30%가 미국 웨스팅하우스라는 회사라는 것을 이유로 하여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기술제휴하고 자본을 참여했다'라는 구실로 한국에 미쓰비시 승강기가 들어오게 됩니다.

또 1959년 말에는 미쓰비시 승강기 설치, 보수를 전문적으로 하는 전문 용역 자회사가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위덕상사의 쉰들러엘리베이터는 당시 국내 최초의 현대식 민간 호텔 중 하나였던 샤보이 호텔 (서울 충무로)에 수입,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2. 국산 승강기의 등장

 

이렇듯 국가 기관, 호텔, 은행, 병원 등의 건물이 신축 또는 증축됨에 따라 승강기의 수요는 점차 확대되었으며 이외에도 산업시설들이 늘어나며 2-3층 이상의 각종 대형공장들이 건축됨에 따라 화물용 승강기 시장도 커졌습니다.

 

1963년부터 공업화의 여세에 따라 각 지역에 건설되는 공장들은 비용을 문제로 비싼 수입 승강기보다는 저렴한 국산 승강기를 선호하였습니다.

 

최초의 한국 승강기회사인 한국승강기제작소도 판매량의 성장에 힘입어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 (현재 마포교회 자리)에 한국 승강기 최초의 승강기 제작 전용 공장을 건축했습니다.

대지 약 1400여 평의 면적에 연간 60대 정도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였다고 하며, 350평의 건물인 제어반, 전동기, 감속기 제작동과 300평의 제관동 2개 동을 블록으로 건축한 공장으로 당시를 고려하면 완성도가 높은 공장이었다고 합니다.

수입상들이 우리나라 신규 승강기 시장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승강기제작소는 꾸준히 국산화에 노력하여 시제품 생산을 추진하였습니다.

그 결과 1960년 부산시 대형 염색공장인 '화랑염직공장' 터에 최초의 국산승강기를 제작, 설치한느 성과를 이뤘습니다.

비록 외국 승강기회사의 선진 기술에 비하면 구형이었지만 당시 국내 기술로는 제작이 매우 어려웠던 트랙션 머신을 만드는 데 성공했던 것입니다.

이 트랙션 머신은 오티스 기종을 모델로 하여 목형을 제작했고, 전동기는 AC-1 타입으로 사장인 최복균 씨가 일일이 수작업으로 권선하여 제작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한국승강기제작소는 동양엘리베이터가 등장하기까지 국내 각 처에 민간 공장을 필요로 하는 화물용 승강기를 거의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업체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마치며

 

 

이후 한국의 승강기 사업은 정부 주도의 개발을 배경으로 큰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본격적인 승강기 사업의 발전은 1960 년대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며 여러 가지 국가 주도의 사업이 시작되면서부터입니다.

격동의 시간을 보냈던 우리나라 승강기 역사는 이때부터 점차 자리를 잡게 됩니다.

 

이어지는 글에서 1960년대 이후의 승강기 발전사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글에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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