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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설비/승강기

한국 승강기의 역사 - 도시개발과 1960년대

by ByteBrute 2023. 2. 26.

승강기 사업은 건축사업 혹은 도시개발 사업과 흐름을 같이합니다. 즉, 도시가 활발히 개발될수록 승강기의 수요도 늘게 되며 함께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성장이 폭발적으로 이뤄진 시기는 박정희 군사정부가 등장하며 정부 주도로 대규모 도시개발이 이뤄지던 60년대였습니다.

 

 

 

 

한국 승강기의 역사 - 도시개발과 1960년대

 

≪ 목차 ≫

1. 박정희 정부의 등장과 도시개발정책
2. 승강기 '사업'의 등장

 

공사장에서 덤프트럭에 폐기물을 옮겨 담는 포크레인의 모습
한국 승강기의 역사 - 도시개발과 1960년대

 

 

1. 박정희 정부의 등장과 도시개발정책

 

일제강점기부터 그대로 시행되어 온 건축법과 도시계획법에 한계를 느낀 박정희 군사정부는, 1962년 건축법과 도시계획법을 새로 재정해 공표합니다.

 

박정희 정부는 새로운 법을 통해 서울을 현대 도시로 탈바꿈하고자 했습니다.

장충체육관, 마포아파트, 한일병원, 워커힐, 자유센터 (현 타워호텔 지대) 등 고층 건물의 건설이 가능해지게 된 것입니다.

고층 건물의 건설이 늘며 승강기의 수요 역시 급증하여 승강기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박정희 정부의 도시개발 정책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부산, 동대구 지역의 개발계획:
    • 1957년 화재로 사라진 부산의 중심지 중앙동에서 부산진역에 이르는 지역과, 동대구 지역의 신시가지 개발을 통해 승강기의 지방 수요를 확대시켰습니다.
  2. 워커힐 프로젝트:
    • 1961년 외화 확보를 위해 외국인 및 주한 미군들의 휴양 및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대단위 휴양시설 개발을 진행했습니다.
  3. 반공국시의 상징물 건축:
    • 유엔군 참전기념탑, 자유센터 건립계획 (영빈관 (현 신라호텔) 교육 및 숙박시설 (현 타워호텔) 등을 포함), 국방부 청사 신축 계획 수립했습니다.
  4. 여의도 및 남서울 개발계획:
    • 여의도를 도시화시키는 것과 함께 천호동에서 강남, 반포까지 이어지는 개발 계획을 실시하여 승강기 산업의 급성장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5. 도시불량지구 개발:
    • 판자촌이라 불리던 지역을 정비하여 발전, 전시 효과를 목적으로 한 대형 주상복합건물 (저층은 상가, 6층 이상은 아파트 기능을 갖는 건물) 건축계획 수립, 착공으로 고층용 승강기의 수요를 대량으로 발생시켰습니다.
    • 종로 낙원동, 서울역 뒤 철도변, 종묘 앞 졸오, 청계천, 을지로 등의 지역이 이에 해당합니다.

 

 

 

 

2. 신규 승강기 회사의 성장

 

승강기의 수요가 폭증하며 수요가 많아짐에 따라 전문업종으로서의 승강기 산업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많은 기술 인력이 필요했지만 1960년대 까지는 '한국 승강기제작소'만 유일하게 승강기 기술자를 길러내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1960년 한국승강기제작소의 설치부장이었던 박종우는 미국무역의 오티스엘리베이터 수입담당자였던 김진순과의 협력으로 '신한실업(주)'를 설립해 승강기 전문인력들을 스카우트하여 승강기 점검, 설치, 보수 전문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1963년 신한실업은 이름을 '신한엘리베이터 주식회사'로 바꾸고, 이미 도입된 오티스엘리베이터의 유지보수와 새롭게 설치되는 승강기의 보수로 신장기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이후 경영진 보강 및 대졸출신 고학력자들을 선발하여 많은 인재들을 채용하였습니다.

또, 1963년 워커힐의 중앙홀에 오티스엘리베이터의 에스컬레이터를 수입,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일제강점기 유일한 에스컬레이터였던 종로 화신백화점 이후 최초로 설치된 에스컬레이터였습니다.

 

한편 서울전기의 '미쓰비시엘리베이터'도 그 진영을 갖추기 시작해 한국전력 본점, 한일병원, 광일빌딩, 명동 오양빌딩 등 당시 대형건물에 약 40대 이상의 승강기를 설치하였습니다.

 

위덕상사의 '쉰들러엘리베이터'는 해남빌딩, 삼성그룹 본관, 교육회관, 엠베서더 호텔 등의 대형건물에 약 30대 이상을 납부하며, 인재들을 채용하는 등 내실을 다지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1960년, 1961년은 4.19와 5.16이 있었던 해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서 큰 변화가 발생했고 보릿고개로 인한 아사자와 대학출신 실업자의 증가가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미 수입된 많은 승강기를 여러 곳에 설치해야 했던 승강기 회사의 인력 수요는, 이런 고급인력과 잉여 노동력을 해결해 주는 좋은 공급원이었습니다.

 

 

 

 

마치며

 

 

 

1960년대에 들어서야 우리나라는 승강기 '산업'이라고 불릴만한 규모의 승강기 규모를 갖게 됩니다.

빠른 시간 내에 도시개발이 진행되며 우리나라의 승강기 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현재에도 엘리베이터 업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력인사들이 처음 승강기 사업에서 이름이 거론되던 시기 이도 하니 이 시기야 말로 한국 승강기 사의 르네상스가 되었던 때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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